기사전거 : 年譜, 行狀(李光庭 撰), 羽溪李氏大同譜 등에 의함
편찬 및 간행
저자의 시문은 증손 李基定이 가장초磁?바탕으로 수집하여 3권으로 편찬한 뒤,
1700년대 초반에 鄭重元의 序와 權斗經, 蔡獻徵, 金弘濟, 李徵道의 跋을 받은
것으로 볼 때 당시 간행을 계획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간행은 이루어지
지 못한 채 李基定의 아들 李鎭萬과 李鎭華 등이 年譜를 기술하고 李光庭에게
행장을 받는 등 부록 문자만 보충하였다.
실질적인 간행은 저자의 7대손대에 와서 이루어졌다. 즉 李時默이 1824년에 李仁行에게 序를 받고, 李時儉, 李時鐸 등이 1831년에 柳尋春에게 다시 序를 받아
6권 3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초간본》 이 본은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우촌古3648-文62-166, 한46-가591), 장서각(D3B-679A),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D1-A431),
성균관대학교 존경각(D3B-1067) 등에 소장되어 있다.
이 간행본에는, 그간 저자의 유문을 수집 편찬하고 부록문자를 증보하는 등에 주축으로 활동한 인물들이 모두 셋째아들 李成材의 후손들로, 李成材의 문집인 「西巖集」이 附集되어 있다.
본서의 저본은 7대손 李時默, 李時儉 등이 1831년경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장본(우촌古3648-文62-166)이다. 이 중 附集인 저자의 아들 李成材의 「西巖集」(七板)은 본 총간의 편집 방침에 따라 수록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구성과 내용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鄭重元(1721), 李仁行(1824), 柳尋春(1831)이 쓴 序가 있고, 그 뒤에 목록이 있다.
권1은 賦(2)와 詩(66)이다. 〈次歸去來辭〉는 저자가 40세에 「朱子書節要」를 처음 읽고서 학자로서의 本領을 새삼 되돌아보고 경계하는 의미에서 〈歸去來辭〉에 차운하여 지은 것이다. 시에는 임진왜란의 참상을 읊은 〈癸巳春〉, 〈題聞慶馬浦院石窟〉, 〈亂離以來……〉 등을 비롯하여 1617년에 差使員으로 상경하면서 長篇으로 엮은 기행시인 〈西行長篇〉,碧沙道 察訪으로 1년 남짓 복무하다가 연로한 모친을 생각하여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면서 읊은 〈題狄仁傑望白雲圖〉 등이 있으며, 끝 부분에 朴善長(汝仁), 吳澐, 成安義 등을 애도하는 輓詩 5편이 모여 있다.
권2는 表(1), 策(1), 疏(4), 序(3), 記(5), 傳(1)이다. 〈擬漢宗正劉向……>은 1604년에 저자가 文科 初試를 치를 때 올린 것이고, 對策은 선비가 지녀야 할 포부에 대한 이듬해 文科 會試의 策問에 답한 것이다. 〈請全恩疏〉는 저자의 작품 중에 특히 주목되는 것으로 광해군 당시 廢母論과 永昌大君을 誣殺하는 논의가 대두되자 강개한 마음에 상중에 지은 소로, 當路者의 저지로 올리지는 못했지만 저자의 義氣를 보여 주는 작품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 밖에 저자의 因樹亭과 夕陽窩에 대한 序와記가 있으며, 말미의 〈炊沙老翁傳〉은 취사노옹으로 自號한 연유를
설명한 것으로 그간의 자호 변천사가 곁들여 있다.
권3은 祭文(3), 行狀(3), 雜著(3)이다. 제문은 어릴 때의 스승 韓佑, 장인 金勗,벗 朴善長에 대한 것이고, 행장은 부친, 모친 및 亡室에 대한 것이다. 잡저로는 저자의 師友 38명에 대한 기록인 〈師友錄〉, 孝行과 節行 등의 덕성을 지닌 10명에 대한 기록인 〈善行錄〉과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겪는동안 時局을 걱정하며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龍蛇錄〉이 있다.
권4~5는 時事雜錄으로, 鄭汝立, 李夢鶴, 金直哉 등의 모반 사건을 필두로 臨海君과 永昌大君의 죽음, 폐모론, 인조반정, 인목대비 폐비 후 그 모친이 제주도에 유배 가서 겪은 일, 과거제의 폐해, 仕路의 폐단 및 柳成龍, 柳雲, 李舜民, 李之蕃 등의 일화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다양한 사건들을 기록한 것이다.
권6은 부록이다. 저자의 현손 李鎭萬의 識가 첨부된 年譜, 李光庭이 지은 行狀, 셋째아들 李成材가 지은 家狀, 金汝煜이 지은 輓詞, 郭이 지은 誄文, 저자를 見一祠에 배향할 때 趙德鄰이 지은 奉安文, 金熙周가 지은 墓碣銘, 李仁行이 지은 〈因樹亭重修記〉가 실려 있다.
권말에 權斗經(1704), 蔡獻徵(1712), 金弘濟(1724), 李徵道(1725)가 지은 跋이 있다.
조선 중기의 학자 이여빈(李汝馪)의 시문집. 6권 3책. 목판본. 증손 기정(基定)이 편집하여 1831년(순조 31)에 간행하였다. 권두에 정중원(鄭重元)·이인(李仁)·유심춘(柳尋春)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권두경(權斗經)과 채헌징(蔡獻徵)의 발문이 있다.
〈차귀거래사 次歸去來辭〉는 이황(李滉)의 ≪주자서절요 朱子書節要≫를 읽고 중고의 선비들이 문장에 치우쳤으나, 이황에 와서 성리학의 연구에 착수, 학문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칭찬하면서, 그 기쁨을 부체(賦體)로 나타낸 것이다.
시의 〈계사춘 癸巳春〉을 비롯해 〈제문경마포원석굴 2수 題聞慶馬浦院石窟二首〉·〈난리이래기근연속 亂離以來飢饉連續〉·〈음증우동제우 吟贈愚洞諸友〉 등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읊은 것으로, 전쟁의 참상을 잘 나타내고 있어 야사로서 가치가 있다.
〈양선생변무소 兩先生辨誣疏〉는 이언적(李彦迪)과 이황의 문묘 종사를 반대한 이이첨(李爾瞻)을 공박하고, 두 사람이 학계에 끼친 공로와 덕망으로 보아 문묘 종사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진언한 것이다.
잡저의 〈용사록 龍蛇錄〉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1598년에 끝날 때까지의 사실들을 보고 들은 대로 기록한 것이다. 궁중과 민간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일을 낱낱이 기록한 뒤 그 결과를 부기하고 원인을 규명한 곳도 있어, 임진왜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시사잡록 時事雜錄〉은 상·하편에 달하는 많은 양으로, 정여립(鄭汝立)의 난과 정인홍(鄭仁弘)·이이첨의 전횡, 정온(鄭蘊)·정구(鄭逑)의 학문에 대한 이야기 등, 광해군 당시에 있었던 여러 가지 사건들을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다.
〈사우록 師友錄〉은 스승 한우(韓佑)를 비롯해 그 제자 허충길(許忠吉)·이희득(李希得)·박승임(朴承任) 등 30여 명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그 밖에 자기의 취미와 학문 연구를 표현한 〈인수정서 因樹亭序〉·〈석양와기 夕陽窩記〉·〈취사옹전 炊沙翁傳〉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학교·단국대학교·성균관대학교 도서관에 있다.